♥ 외도 보타니아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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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보타니아
◈ 외도의 역사
서울에서 한동안 교편을 잡다가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사업을 하던 고 이창호(2003년 별세)
선생과 부인 최호숙(78) 선생은 1969년부터 외도를 부분적으로 사들였다.
외도는 곳곳에 바위만 무성하고 한적한 무인도에 가까운 섬이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도선이 없는 외딴 섬이었기 때문에 먼 섬으로 분류된다.
광복 직후에 최고 8가구가 살았지만 초기에는 변변한 선착장 시설조차 없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비탈진 밭에 바람에 강한 뿌리식물인 고구마를 심고,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하면서 주위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기상이 악화되는 날이면,
4-5일 정도 교통이 두절되어 유배지로 변하기 일쑤였다.
이런 외진 섬에 1969년 7월 이창호 선생은 낚시를 왔다가
풍랑을 만나 우연히 하룻밤 머물면서 인연을 쌓았던 것이다.
그때 외도의 빼어난 절경에 반하여 반대하는 부인을 설득한 다음,
외도의 외딴 집 한 채를 매입하였다. 1973년까지 3년 동안 점차로 섬 전체를 사들이게 된다.
이 선생의 고향은 평안남도 순천으로, 이 섬의 자연 환경에 매료되어 외도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그 당시에는 외도의 약수터 주위에 8가구가 단일 마을로 모여 살면서
어업과 약간의 밭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물도 부족하고 도선과 전기와 전화는 물론 선착장조차 없어서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낙도 중의 낙도였다.
기상이 악화되면 4-5일간 교통이 단절되기도 했다.
그래서 바람이 많이 분다고 예보가 내리면 이 섬에 손님이 들어오지못하게 막았다.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꼼짝없이 며칠 동안 오가도 못한 채 갇히기 때문이다.
야간이나 바람이 많이 불 때 급한 환자가 생기면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어업과 약간의 야산을 개간해 농업을 하던 섬 주민들은
어찌하든지 기회만 있으면 육지로 나가는 게 꿈이었다.
외도는 과거에는 총 8가구 37명의 주민이 살았고 분교도 있었다.
이들 부부는 독립된 섬이라는 이점과 함께 절경에 반하여 3년에 걸쳐서
차근차근 섬을 사들였다. 처음에 3천 그루의 밀감나무,
편백 방풍림 8천 그루를 심어 놓고 농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겨울에 한파로 밀감이 얼어 죽어 큰 손해와 아픔을 맛봤다.
그 다음은 80마리의 돼지를 키워 보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도선이 없는 관계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 뒤에 돼지 가격 파동으로 다시 한 번 시련을 겪었다.
선착장은 수심이 깊어서 태풍이 덮칠 때마다 7차례나 파도에 휩쓸려가고 말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외도 -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룬 곳
(한국의 섬 - 경상남도·경상북도, 2016. 7. 25., 이재언)
▶ 2020년 01월 04일
ㅡ 하 늘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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